전체 글 (56) 썸네일형 리스트형 라이베리아, 우리의 아프리카 최대 수출 대상국이 된 사연 라이베리아는 바로 옆 나라인 시에라리온과 함께 해방된 흑인 노예들이 역이주하여 세운 나라입니다. 시에라리온은 영국의 노예제 폐지주의자(Abolitionist)들에 의해, 라이베리아는 미국 식민협회(American Colonization Society)에 의해 역이주가 이루어졌습니다. 물론 소수의 인원이 역이주하였기 때문에 현재 각 국가의 다수 종족은 기존 원주민들입니다. 시에라리온 방문기는 지난 글을 참조하시기 바라며, 이번 글에서는 라이베리아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자유를 찾아 역이주한 흑인 노예들, 시에라리온에서 이날치 밴드를 만나다."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빵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 전자는 미국의 독립운동가였던 패트릭 헨리(Patrick Henry)가 영국의 식민지배를 거부하며 외쳤.. 자유를 찾아 역이주한 흑인 노예들, 시에라리온에서 이날치 밴드를 만나다.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빵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 전자는 미국의 독립운동가였던 패트릭 헨리(Patrick Henry)가 영국의 식민지배를 거부하며 외쳤던 말입니다. 1776년, 미국은 영국과의 독립전쟁에서 승리하며 그토록 원하던 독립과 자유를 얻었습니다. "빵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 이 말은 1789년 프랑스 대혁명 당시, 빵 평등권을 요구하며 외쳤던 구호입니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신분에 따라 다른 빵을 먹어야 했습니다. 귀족들은 흰색의 부드러운 빵을 먹었으나, 가난한 하층민들은 호밀로 된 검고 딱딱한 빵을 먹어야 했던 것입니다. 결국 빵 평등권은 구현되었고, 이때 만들어진 빵이 바로 바게뜨(Baguette)입니다. 위의 두 구호는 민주주의의 핵심가치인 자유와 평등을 요구하는 처절한 외침이.. 유럽 제국주의의 아프리카 식민화, 포르투갈이 지배한 앙골라 화려하고 세련된, 풍요와 사교의 도시를 일컬을 때 흔히 "어디 어디의 파리"라고 하는데요, 아프리카에도 그런 도시들이 있었습니다. 70년대 전성기를 구가했던 코트디부아르의 수도 아비장(Abidjan)이 그랬었고, 앙골라의 수도인 루안다(Luanda)가 그랬었습니다. 그런데 아비장은 프랑스의 식민지배를 겪었고, 독립 후에는 프랑스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등 프랑스와의 관계가 지속 되었기 때문에 말 그대로 "아프리카의 파리"가 어울리는데요, 루안다는 프랑스가 아닌 포르투갈 영향하에 있었기 때문에 좀 다르게 불러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은 아프리카를 약탈하고 식민지로 만들었던 유럽 제국주의를 간단히 살펴 보고, 아프리카 식민지를 양분하다시피 한 영국과 프랑스가 아닌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았던 앙골라에 대해 이.. 이전 1 ··· 4 5 6 7 8 9 10 ··· 1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