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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유럽 제국주의의 아프리카 식민화, 포르투갈이 지배한 앙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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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하고 세련된, 풍요와 사교의 도시를 일컬을 때 흔히 "어디 어디의 파리"라고 하는데요, 아프리카에도 그런 도시들이 있었습니다. 70년대 전성기를 구가했던 코트디부아르의 수도 아비장(Abidjan)이 그랬었고, 앙골라의 수도인 루안다(Luanda)가 그랬었습니다.
 
그런데 아비장은 프랑스의 식민지배를 겪었고, 독립 후에는 프랑스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등 프랑스와의 관계가 지속 되었기 때문에 말 그대로 "아프리카의 파리"가 어울리는데요, 루안다는 프랑스가 아닌 포르투갈 영향하에 있었기 때문에 좀 다르게 불러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은 아프리카를 약탈하고 식민지로 만들었던 유럽 제국주의를 간단히 살펴 보고, 아프리카 식민지를 양분하다시피 한 영국과 프랑스가 아닌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았던 앙골라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아프리카를 식민지로 만들었던 유럽 제국주의 국가들

북아프리카의 모로코 국경 내에 세우타(Ceuta)라는 작은 스페인 영토가 있습니다. 이곳을 통해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 스페인에 닿을 수 있는데요, 종로구보다 작은 면적에 8만 명 정도의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세우타는 로마제국, 이슬람 등의 지배를 거쳐 1415년 포르투갈의 엔리크(Infante Dom Henrique) 왕자에 의해 점령된 후, 최종 스페인의 영토가 되었습니다.

세우타에서 배를 타고 50분이면, 스페인에 도착합니다. 배에 차를 싣고 갈 수도 있습니다. 사진 오른쪽은 세우타의 상징인 "헤라클레스의 기둥"입니다.

 
포르투갈의 세우타 점령 이후, 대항해 시대와 제국주의 시대를 거치며 유럽 열강은 경쟁적으로 아프리카를 약탈하고 식민지를 건설하였습니다. 포르투갈이 선봉에 서서 초기 약탈과 식민화를 주도했으며, 이후 영국/프랑스/스페인/네델란드 등이 가세하였습니다.
 
당시 소규모 왕국이나 부족 형태로 나뉘어져 있었던 아프리카는 해변가로부터 내륙에 이르기까지 유럽 제국주의에 의해 장악되었고, 1885년 베를린 회담을 통해 강제적으로 분할되었습니다.

이때 유럽 제국주의는 지역의 인종적, 문화적 차이를 무시한 채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국경선을 그었으며, 이로 인해 세네갈 속의 감비아와 같은 기이한 국경선이 만들어졌습니다(감비아는 감비아 강을 따라 국경선이 형성되었는데, 대서양에 접해 있는 한 면을 제외한 삼 면이 세네갈에 의해 둘러 싸이게 되었습니다. 경기도에 둘러 싸인 서울과 유사한 모습을 갖게 된 것입니다). 

 
베를린 협정 시 가장 많은 땅을 소유하게 된 나라는 프랑스로 36%의 지분을 차지하였으며, 다음으로 영국이 29%를 차지했습니다. 이외는 포르투갈, 벨기에, 독일 등이 차지하면서 아프리카는 두 나라를 제외한 전역이 유럽 제국주의의 식민지로 전락하였습니다.

당시 독립을 유지했던 나라는
미국이 자국 노예들을 역수출하여 건설한 라이베리아(Liberia)와 에티오피아(Ethiopia)뿐이었습니다. 에티오피아도 결국 1936년 무솔리니에 의해 점령당하고 말았습니다. 
     

유럽 식민지화 이전의 아프리카 고유문명(왼쪽) vs. 1939년의 식민지 모습(오른쪽), 출처 위키피디아

 

"아프리카의 리스본" 루안다

앙골라는 1482년 포르투갈 탐험가에 의해 처음 알려진 후, 1975년 독립 전까지 포르투갈의 지배하에 있던 나라입니다(1641년 네델란드에 의해 잠시 점령되었으나, 1648년 포르투갈이 재탈환함).

수도인 루안다는 16세기 중반 포르투갈인들이 이주하여 설립되었는데, 1836년 노예무역이 폐지되기 전까지는 브라질로 노예들을 수출하는 노예무역의 핵심기지였으며, 이후에는 팜유 / 목재 / 상아 / 커피 등을 수출하는 무역항으로 변모하였습니다.

 
무역항으로서 발전을 거듭한 루안다는 독립전쟁 중에도 피해를 거의 입지 않고 성장함으로써, 1940년대 6만 명 정도이던 인구가 1975년 독립 전에는 48만 명까지 증가되었을 정도로 호황을 누렸습니다.

이때 루안다를 "아프리카의 파리"로 칭하기도 하였다 합니다. 제 생각에는 아프리카의 파리
보다는 "아프리카의 리스본"이 더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현재 앙골라의 인구는 3,500만 명 정도이며, 포르투갈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포르투갈어를 사용하는 국가 중, 브라질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국가입니다. 

 
 
저에게 앙골라는 개인적으로 특별한 나라입니다. 저의 친한 친구가 이곳에서 사업도 하고, 한글학교를 열어 봉사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친구는 잘 다니던 대기업을 그만두고, 도전을 택하였는데 앞으로도 앙골라에 머물며 도전을 계속할 것이라 합니다.

처음 이 친구가 앙골라에 간다 했을 때, 왜 이런 모험을 하는지, 앙골라가 뭐가 좋아서 가는지 의아하기도 했고 걱정도 되었었습니다. 
 
그러다 '21년에 루안다를 처음 방문했었는데요, 겉으로 보이는 것들이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 대비 선진적이고 깨끗했으며, 포르투갈 사람을 만나고 포르투갈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것다는 것이 색달랐습니다.

현대적인 쇼핑 몰과 빌딩, 깨끗한 해변가 등 도시의 전반적인 인프라가 좋은 모습이었습니다. 부자 망해도 3년은 간다더니, 루안다의 옛 영광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과 달리 앙골라 경제는 여러 면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앙골라 군사 박물관에서 바라 본 루안다 해변
루안다 시내
아날로그 옥외광고가 대부분인 아프리카에서 대형 스크린을 활용한 디지털 광고가 있는 루안다
대형 쇼핑몰 내 레스토랑, KFC도 보입니다. 사진 오른쪽은 포르투갈 식당
수영, 산책 등 휴양하기 좋은 해변
해변가에 위치한 부촌(왼쪽), 바로 근처에 있는 낙후된 지역
루안다 시 외곽

 

루안다 외곽 도로

 

석유에 의존한 앙골라 경제, 휘발성 성장에 그치다.

2002, 27년간의 내전을 종식한 앙골라는 원유 및 광물가격의 상승에 힘입어 2008년까지 10%가 넘는 고도성장을 구가하였습니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른 유가 급락으로 2009년 경제성장률은 마이너스 성장을 겨우 면할 정도로 급락하였습니다(0.9% 성장).

 

2009 IMF 구제금융 및 국제 유가의 회복에 따라 성장하는 듯 하던 앙골라 경제는 국제 유가 재급락 및 저유가 지속에 따라 2012년 경제성장률 8.5%를 정점으로 지속 하락하였으며, 2016년부터는 마이너스 성장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이후 코로나 이슈까지 겹치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습니다

앙골라 경제성장률 추이, 출처 World Bank

 
 

제가 처음 방문했던 2021년부터 플러스 성장으로 돌아서면서 조금씩 살아날 기미를 보이고 있습니다만, 재정적자 및 외환 부족, 고물가와 취약한 소비기반 등으로 여전히 어려운 상황입니다.

 

한때 동네 개들도 달러를 물고 다녔다 할 정도로 달러가 넘쳐 났던 앙골라의 경제발전은 전적으로 석유와 다이아몬드 등의 천연자원에 의존한 휘발성 성장이었습니다. 특히, 석유에 대한 과도한 의존도가 이슈인데, 수출의 90%와 정부 재정수입의 70%를 석유에 의존하다 보니 국제 유가의 변동에 매우 취약한 상황입니다.

 

이러한 상황은 단기간 내 개선될 것 같지 않습니다. 제 친구도, 제 사업 파트너들도 모두 달러 부족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달러가 없어 제때 물건을 수입하지 못하고 있고, 물가는 외국인들이 살기에도 과도하게 높은 상황입니다.

 

컨설팅 업체인 머서(Mercer)2017년 외국인이 살기에 가장 비싼 도시로 루안다를 선정했었으며, 2023년에는 "외국인이 살기 좋은 도시" 보고서에서 루안다를 241개 도시 중 205위로 발표했습니다. 머서의 Quality of living 리포트가 해당 도시의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루안다의 물가가 비싼 건 확실한 것 같습니다.


 

23년만의 앙골라 대통령 방한

올해 4월 주앙 로렌수 앙골라 대통령이 우리나라를 방문하였습니다. 앙골라 대통령으로는 '01년 이후 23년만에 방문하는 것인데요, 사실 양국간 교역규모는 상당히 미미합니다. 최근 3개년('21~'23년)간 우리의 수출규모는 연평균 2.3억불 수준에 불과하고, 수입은 훨씬 더 미미합니다.
 
앙골라 입장에서는 중국 경제에 대한 과도한 의존과 Risk를 줄이고, 우리의 경제발전 경험을 본격적으로 따라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는 것 같습니다. 그간 앙골라는 경제건설 및 수출 등의 여러 방면에서 중국에 크게 의존해 왔는데, 최근 중국 경제의 불황 심화 및 앙골라 내 반중정서 고조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필요를 느끼고 있는 듯 합니다.
 
우리 입장에서 보면, 앙골라의 풍부한 천연자원 활용은 물론 농업 분야 공략도 도모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또한 자동차 및 한류를 활용한 소비재 수출도 더욱 적극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물론 외환부족에 따른 수입 및 대금결제 통제, 두바이 등을 통한 우회수입 업자들과의 경쟁 등 여러모로 제약조건이 많이 있습니다만, 앙골라에 있는 제 친구처럼 도전해 볼 가치는 있어 보입니다.
 
루안다를 방문해 보니, 아름다운 해변과 바오밥이 자라는 골프장, 온건하고 성실한 현지인 등 긍정적인 요소도 많이 있었습니다. 제 친구도 이런 부분을 고려하여 이곳에 정착한 듯 한데요, 이번 로렌수 대통령의 방한을 계기로 양국이 실질적인 협력을 강화했으면 합니다. 

루안다 해변에 위치한 포르투갈 식당
루안다 Mangas 골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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