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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더 씁쓸하게 느껴진 아프리카 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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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한잔과 함께 추석 연휴를 즐기려 하는데, 갑자기 커피 머신이 작동하지 않네요. 궁여지책으로 한편에 방치해 두었던 사우디 커피를 마시기로 했습니다. 사우디 커피를 마시다 보니, 중동/아프리카에서 경험한 커피 맛이 떠오릅니다. 

 

[노란빛의 사우디 커피]

이번에 제가 마신 커피는 Anoosh라는 회사가 만든 인스턴트 커피인데요, 이 회사는 아랍식 고급 초콜릿과 쿠키 등을 주로 만드는 회사입니다. 그런데 이 커피 한 봉지 가격이 무려 3천 원이나 합니다. 대체 뭐가 들어 있길래 이리 비싼지 성분을 확인해 보니, 우리의 인스턴트 커피와는 레벨이 다릅니다. 사실 커피가 아닌 것 같기도 합니다. 

 

 

커피보다 정향(Clove), 카다멈, 샤프란 등 고급 향신료가 더 많이 들어가 있습니다. 대강 어떤 향의, 어떤 맛일지 짐작이 갑니다. 우리에겐 익숙하지 않은, 왠지 인도의 맛이 떠오릅니다.

정향(Clove)
카다멈(왼쪽), 샤프란(오른쪽)
그리스의 Chios 섬에서만 자란다는 Mastic

 

실제로는 어떤 맛일지 한번 끓여 보았습니다. 우리는 커피에 끓는 물을 부어 마시는데, 사우디 등 중동에서는 끓는 물에 커피 가루 등을 넣어 함께 끓입니다. 저는 우리식대로 만들어 보았는데요, 끓이기 전이나 끓인 후나 색깔이 커피가 아닙니다! 샤프란의 양에 따라 노란빛이 도는 갈색이 되거나 노란색 커피가 됩니다. 터키나 레바논 등에서 마신 커피는 대체로 강하게 로스팅된, 검은색이 강한 커피였는데 사우디에서는 쓴맛을 약하게 하기 위해 향신료를 넣는다 합니다. 그렇지만 이건 커피가 아닌 듯 합니다^^. 커피 맛이 잘 느껴지지 않습니다. 역시 향신료의 느낌이 강합니다. 그래도 새로운 경험이었고, 순한 맛이라 편안했습니다. 

저는 일반 커피 잔을 이용했는데요, 아랍 커피 잔은 아래 사진처럼 소주 잔 정도의 크기입니다.
왼쪽) 아랍 커피 잔, 오른쪽) 저는 커피에 끓는 물을 부어 커피를 만들다 보니 다 마시고 난 후 향신료 등이 남았는데요, 사우디에서는 향신료 등은 남기고 커피만 따라 마신다 합니다.

 

[회복과 휴식의 에티오피아 커피]

인간이 최초로 커피 열매를 발견하고 커피를 만들어 마시기 시작한 곳이 에티오피아라고 합니다. 그것도 길게는 2천년 전부터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는데요, 커피는 이곳에서 발원하여 중동 및 터키를 거쳐 유럽과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합니다.

 

저에게 에티오피아 커피는 여행자의 피로를 삭 가시게 만들어 준 "회복과 휴식"이었습니다. 동아프리카에 존재하는 에티오피아는 아프리카의 핵심 허브(Hub) 중 하나로 이곳을 통해 아프리카 전역은 물론 전세계로 여행이 가능합니다. 저는 중국에서 나이지리아로 여행을 한 적이 있는데, 북경에서 성도를 거쳐 나이지리아에 이르는 대장정이었습니다. 북경에서 나이지리아에 이르는 직항이 없다 보니, 에티오피아에서 환승해야 했습니다. 밤 비행기로 출발을 하여 에티오피아에 이르니 아침이었습니다.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 강한 저였지만, 몸이 피곤하니 마음도 약해졌고, 그래서 그저 쉬고 싶은 마음뿐이었습니다.

 

그렇게 찾아간 곳이 에티오피아 항공사의 비즈니스 라운지였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연기가 피어 오르고 있었고, 에티오피아 아가씨가 전통방식으로 커피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현장에서 생원두를 숯불로 달구어진 팬에 볶고, 맛있게 볶아진 원두를 직접 갈아 커피를 내리는 광경, 처음 보는 이국적인 광경이라 갑자기 피로감이 사라졌습니다. 그 커피를 받아 마셔 보니 몸과 마음이 리셋(Reset)되는 느낌까지 들었습니다. 커피는 사약처럼 검고 진하였으나, 독이 달콤한 것처럼 참으로 달콤한 맛이었습니다. 

 

비행기에서 바라 본 에티오피아의 풍경. 에티오피아는 고산지대가 많고 토양이 비옥하여 맛과 향이 아라비카 커피가 자랄 수 있는 최적의 장소라 합니다.

 

 

[검은 물같은 레바논/튀르키예의 커피]

유럽에 커피가 전해지기 전 중동을 방문했던 유럽 사람들은 검은 물을 마시는 모습을 보고 상당히 신기해했다고 합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레바논/튀르키예 사람들은 진한 블랙 커피를 마십니다. 이들이 커피를 만드는 방식은 우리와는 사뭇 다릅니다. 우리는 커피 가루에 뜨거운 물을 붓는 방식으로 커피를 만드는데, 이들은 처음부터 물과 커피를 잘 섞어 준 후 함께 푹 끓여 냅니다. 그래서 진하고 진한 커피가 만들어지는데 마치 사약 같습니다^^. 이 커피를 마시면 바로 죽을 것 같은 느낌? 그래서 레바논/튀르키예에서는 커피와 함께 물 한잔이 제공되는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진한 커피와 함께 제공되는 물은 커피를 마신 후 입가심하라는 것이 아니라, 커피를 마시기 전에 입가심하라는 것입니다(좋은 커피를 마셨는데 입가심할 이유가 없겠죠?^^)

왼쪽은 튀르키예 공항에서 맛 본 터키 커피, 오른쪽은 레바논 친구가 끓여 준 레바논식 커피입니다. 레바논 커피가 더 진하고 걸쭉해 보입니다.
왼쪽) 물과 함께 제공되는 터키 커피. 물은 커피를 마시기 전에 마시는 것입니다. 오른쪽) 커피를 마시고 나면 커피 가루가 남는데, 이 모양을 보고 점을 치기도 한답니다.
레바논의 커피 맛집. 원두를 직접 볶아 판매하고, 커피를 만들어 팔기도 합니다. 원두를 사서 끓여 보았는데, 엄청 쓰더군요...

 

[사치품인 아프리카의 커피]

아프리카는 커피의 원산지인 에티오피아를 비롯하여 우간다, 케냐, 아이보리코스트 등이 커피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특히, 에티오피아는 세계 10대 커피 생산국으로 예가체프 등 아라비카 품종을 주로 생산하고 있습니다. 에티오피아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커피를 마셨으며, 커피는 그들 일상의 중요한 부분 중 하나입니다. 따라서 그들이 생산하는 커피의 40% 정도가 자체 소비된다 합니다. 

 

그런데 아프리카 2위의 커피 생산국인 우간다와 이외 생산국들의 커피 소비량은 현저히 낮습니다. 우간다와 케냐의 경우, 전체 생산량의 95%가 수출되며, 자국 내 소비량은 5% 수준에 불과합니다. 에티오피아와는 상당히 대조적인 모습입니다. 이들 국가들은 에티오피아와 달리 커피 문화가 발달하지 못하였으며, 영국 식민지를 겪은 국가들은 영국의 영향으로 커피보다는 차를 마시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커피 가격이 너무 비쌉니다. 서민들에게 커피는 사치품입니다. 서민들이 마시는 커피는 값싼 인스턴트 커피가 대부분입니다. 원두 커피를 내려 마시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저와 같이 일을 했던 직원들에게 카푸치노를 사주었더니, 대부분이 카푸치노를 처음 먹어본다 하더군요. 부양해야 할 가족은 많은데, 물가는 폭등에 폭등을 거듭하니 커피가 땡기지 않았을 것입니다....저에게 나이지리아 카푸치노는 씁쓸한 맛이었습니다....

나이지리아 레바논 식당에서 맛 본 카푸치노. 고봉같은 거품이 인상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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