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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모로코] 모로코식 이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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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코의 종교는 이슬람입니다. 모로코에 가기 전까지 제가 아는 이슬람은 "테러를 일삼는 종교, 돼지고기를 안 먹는 종교, 우리와는 너무 달라 가까이하기 어려운 종교"라는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저는 2008년부터 모로코 생활을 시작했고, 현지에서 3년을 살았습니다. 
 
현지에 살면서 이슬람을 접해 보니, 생각했던 것과 다른 게 많았습니다. 잘못 알고 있었던 것도 있었고, 같은 이슬람 내에서도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중 모로코의 이슬람은 상당히 온건하고 세속적인 성격이 강한 이슬람이었습니다. 수니파(Sunni) 이슬람에 속하는 모로코는 수피즘(Sufism)의 영향과 국왕의 이슬람 과격주의 배격 및 친서방 정책으로 인해 다른 이슬람 국가보다 훨씬 더 자유롭고 개방적인 분위기였습니다.   

[술과 히잡에 관대한 모로코 이슬람]
술을 예로 들면, 이슬람 국가에서는 외국인이라도 술을 마실 수 없거나, 허가된 장소에서만 음주가 가능합니다. 그래서 몰래 술을 만들어 마시는 외국인들도 있고, 두바이에 있는 한국 식당 중에는 물병에 소주를 넣어 물처럼 판매하는 곳도 있습니다.

하지만 모로코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었습니다. 모로코에서는 술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것이 합법이며, 외국인들은 쉽게 술을 접하고 마실 수 있었습니다. 물론 허가된 장소에서만 음주가 가능하다는 제약이 있습니다만, 사실상 유명무실한 상황인 듯했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술과 담배 등 세속적인 즐거움을 누리는 모로코 친구들이 적지 않다는 점이었습니다! 

대표적인 휴양도시인 마라케시(Marrakech)의 나이트 클럽

여성들의 경우, 대도시에 사는 젊은 여성들은 히잡(Hijab)을 쓰지 않는 경우가 많았고 차량운전 등 일상생활에 별다른 제약이 없어 보였습니다. 사회활동도 활발하여 직장에 다니는 여성들이 많았는데, 심지어 돈을 벌기 위해 나이트 클럽이나 술집 등에 나가는 여성들도 있었습니다. 물론 늘 히잡을 쓰며, 독실한 삶을 추구하는 친구들도 많았는데, 저와 같이 일을 했던 사미라(Samirah)는 입사하고 나서야 술이라는 걸 처음 보았다 할 정도였습니다.   
 
모로코가 전반적으로 개방적이긴 하나 사미라같은 친구들이 살고 있는 이슬람 국가인 만큼 언행에 주의를 해야 합니다. 모로코 사람들은 외국인에 대해 친철하고 관용적입니다만, 잘못된 언행은 큰 문제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그들 사이에서 우리는 "어항 속의 금붕어" 신세입니다. 그들이 우리의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다 생각하고, 현지의 종교와 문화를 존중하도록 노력해야 안전을 보장 받을 수 있습니다.
 
[정화된 자만이 Touch 할 수 있는 꾸란]
어느날 말로만 듣던 꾸란(Quran)의 실물을 접하였습니다. 놀라움과 호기심에 바로 펼쳐 보려는 순간, 모로코 친구들이 안된답니다. 이슬람이 아닌 저는 꾸란에 손을 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목욕재계와 같은 정화의식을 거친 후에야.... 어쩌고 하는데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저 '이렇게 까다롭게 하니 이슬람이 배척받는 거 아닌가?' 하는 반감만 느껴졌습니다.
 
'불교나 기독교 신자가 되려면 불경이나 성경을 읽어야 하고, 불경이나 성경을 접하는 데 아무런 제약이 없는데 이슬람은 대체 왜 이러는 걸까?', '꾸란을 읽지 않고 어떻게 이슬람을 이해하고 무슬림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어불성설이다.' 이런 생각들을 하며 관련 자료를 찾아보고 모로코 친구들에게도 물어보았습니다.
 
꾸란에는 "정화되지 않은 자는 꾸란을 Touch 할 수 없다"라는 구절이 있다 합니다. "정화되지 않은 자"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가 관건인데, 해석이 분분한 것 같습니다. '다신론자 등 비무슬림들은 정화되지 않은 사람들이라 꾸란에 손을 대서는 안된다, 정화되지 않은 자는 비무슬림이 아닌 사탄을 의미하는 것이다, 무슬림이라 해도 정화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꾸란에 손을 댈 수 없다, 정화라는 것은 육체적/정신적인 정화를 모두 의미한다, 비무슬림들은 아랍어로 된 꾸란에 손을 대서는 안되지만 해당 국가의 언어로 번역된 꾸란은 읽을 수 있다' 등등...  
 
어떤 게 꾸란의 진정한 뜻인지는 신께서만 아실텐데요, "꾸란, 특히 아랍어로 된 꾸란은 가장 신성한 것으로 무슬림만 Touch 할 수 있다. 그런데 무슬림도 육체적/정신적으로 정화된 상태에서만 손을 댈 수 있다, 비무슬림은 번역본을 읽거나 꾸란 낭송을 들음으로써 이슬람을 접하고 이해할 수 있다"라는 게 이슬람 학자들의 대체적인 견해인 것 같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무슬림은 정화된 사람, 비무슬림들은 정화되지 않은 사람"으로 규정하여 비무슬림들을 배척하는 자들도 있을 것입니다. 한강의 노벨상 수상을 비난하는 일부 한국인들이 존재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여하튼 긍정적으로 보면, "무슬림과 비무슬림을 차별하는 것이 아니며, 꾸란은 신성한 것이니 그에 맞게 다루고 그 뜻을 따르도록 노력하라"라는 의미인 것 같습니다.
 

꾸란

 
[우리 쌀을 발견하다]

모로코에는 까르푸와 같은 대형 마트가 발달해 있습니다. 우리의 대형 마트와 별반 다르지 않은데요, 저는 이곳에 꼭 가야만 했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먹는 쌀을 구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먹는 쌀은 자포니카 품종으로 전 세계 생산량의 10% 내외에 불과하고, 글로벌로 유통되는 양이 아주 제한적이라 합니다.
 
이런 상황이니 오지인 모로코에서는 우리 쌀을 구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역시나 그렇다 하여, 2008년 모로코 이주 시 많은 양의 쌀을 실어 왔었습니다. 그런데 점점 쌀이 떨어져 가면서 불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전통시장, 대형 마트 등을 다 뒤져 보았지만 우리 쌀은 없었고 안남미만 가득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대형 마트에서 우리 쌀과 유사한 품종을 발견했습니다. 1kg 정도 되는 소용량 몇 봉지만이 놓여 있었습니다. 또 늘 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이게 어디입니까? 이후 수시로 드나들면서 보이는 대로 구매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당시 쌀 부족을 걱정하면서, 우리 쌀과 식량주권의 소중함을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먹는 쌀은 생산/유통량이 아주 제한적이어서 자급자족을 하지 않을 경우 공급대란 및 가격폭등을 피할 수 없습니다. 한때 쌀 수출국이었던 필리핀이 식량주권을 포기하면서 대규모 폭동이 발생했었는데, 우리도 그러한 상황을 겪을 수 있는 것입니다. 
모로코 온라인에서 판매되는 쌀. 미국 기업이 미국에서 생산/수출하는 쌀입니다. 중국어도 있고, 스시 라이스라 하네요. 그런데 가격이 무려 20만원!

 
[양을 직접 잡아 제물로 바치다]
그런데 어느 날, 대형 마트 밖에 울타리가 설치되어 있고 그 안에 양들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무슨 일인가 싶어 알아보니 곧 "이드 알 아드하"(Eid al-Adha)라 합니다. 이드 알 아드하? 이드(Eid)는 축제를, 아드하(Adha)는 희생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우리말로 번역하면 "희생절"이라 할 수 있는데요, 이슬람에서 가장 큰 명절입니다. 이슬람력으로 12월의 10일에 시작되는데, 육안으로 달의 모양을 보고 최종 날짜를 결정합니다. 따라서 명절에 임박해서야 날짜가 확정되기도 하고 국가별로 날짜가 다르기도 합니다. 올해 모로코의 희생절은 양력으로 6.15일에 시작되었네요.
 
이드 알 아드하는 이브라힘(Ibrahim)이 신의 명령에 따라 그의 아들을 신께 바치고자 하였으나, 이브라힘의 순종을 확인한 신이 아들대신 숫양을 바치도록 한 데서 비롯되었습니다. 이브라힘이 바치고자 한 아들이 누구냐에 관해 이슬람과 기독교의 주장이 다른데요, 성경에는 이삭이라 명기되어 있으나, 꾸란에는 구체적인 이름이 언급되어 있지 않다 합니다. 하지만 이슬람에서는 장자인 이스마일로 여기고 있습니다.
 
이드 알 아드하 기간 동안 대부분 양을 제물로 바치는데, 염소와 소, 그리고 낙타도 제물로 바칠 수 있습니다. 양의 경우, 매년 600여 만 마리가 희생된다 합니다. 그런데 시골은 물론 도시에서도 양을 잡고 소비하는 과정이 상당히 리얼합니다.

저는 모로코 최대 도시인 카사블랑카에서 거주하고 있었는데요, 길을 가다 깜짝 놀랐습니다. 도심 한복판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비싼 단독주택들이 많은 곳이었는데, 대낮에 허리에 커다란 칼을 찬 사람이 도로를 배회하고 있었습니다. 누군가 했더니, 양을 도축해 주는 사람이었습니다.

모로코 친구들 말에 따르면, 큰 아들이 직접 양을 잡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할 경우 도축 대행업자들에게 맡길 수 있다 합니다(관련 서적을 보니, 반드시 장자가 아니어도 되고, 심지어 여자도 도축할 수 있다 합니다). 

 
저희 옆집에는 모로코 사람이 살았었는데, 집으로 양 한 마리를 끌고 들어가더군요. 이후 며칠간 양고기 굽는 냄새가 진동을 했습니다. 그런데 도축한 양은 자기 혼자 먹는 게 아니었습니다. 1/3씩 나누어 가난한 사람, 가족이나 친구 등과 공평하게 나누어 먹는다 합니다. 뒤에서 말씀드릴 라마단(Ramadan)과 마찬가지로 이슬람의 명절은 종교행사이며, 가난하고 힘든 이웃을 돌아보고 도와주는 행사입니다.

비즈니스 관점에서 보면, 희생절 기간에는 냉장고가 많이 팔립니다. 도축한 고기를 냉장보관해야 하니까요. 라마단 기간에는 늦은 아침을 먹고 나서 TV를 시청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TV가 많이 팔리고, TV 광고료도 비싸집니다. 

 

아틀라스 산의 베르베르 거주지
아틀라스 산에서 자라는 양들

[한 달간의 단식, 라마단]
라마단은 아랍어로 "무더운 달"을 의미하는데, 종교적으로 매우 중요하고 신성한 달입니다. 이슬람력 9월에 해당하는 라마단에 무함마드가 꾸란을 계시받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신성한 라마단 기간에는 몸과 마음을 정결히 하고 신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나쁜 생각이나 욕설을 금하고, 성적 접촉 등도 금해야 합니다. 특히, 단식을 통해 신에 대한 믿음을 테스트하고, 절제력을 배양하며, 가난한 이웃의 고통을 느끼고 자비를 베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올해 모로코의 라마단은 3월 12일에서 4월 11일까지 한 달간이었습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들이 다 단식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임산부나 노약자, 어린이 등은 단식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또한 단식한다 해서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는 게 아닙니다. 해가 떠 있는 동안에는 물도 마실 수 없습니다만, 해가 지면 풍성한 식사를 즐길 수 있습니다.

식사를 마치면 가족들과 함께 늦게까지 TV를 시청하거나 마트에 가서 쇼핑을 즐깁니다. 라마단에는 선물하는 문화가 있기 때문에 이 기간 동안 물건 구매가 많고, 이에 맞추어 기업들이 대대적인 프로모우션을 진행합니다. 이렇게 시간을 보내고 나서 잠을 자고 새벽 일찍 일어나 또 밥을 먹습니다. 동이 트기 전에 먹어 두는 것이죠. 

 
이런 식으로 하면, 낮에는 단식 때문에 피곤하고 밤에는 폭식 등으로 또 힘들어질 것 같습니다. 이런 속에서 라마단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는 게 쉽지는 않아 보이는데요, 그래도 한 달 동안이나 고행을 하는 건 분명한 것 같습니다. 저와 같이 일을 했던 친구들은, 모로코가 세속적인 면이 강합니다만, 다들 독실한 마음으로 라마단을 보냈습니다. 평소 술을 마시던 친구들도 이때는 술 담배를 하지 않았습니다....
 
라마단 기간이라 해도 외국인은 예외입니다. 이 기간 동안 대부분의 식당들은 문을 닫습니다만, 카사블랑카 시내에 있는 일부 식당들은 문을 열었고, 그곳에서 식사를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들 단식으로 고통받고 예민해진 상황이라 조심하는 게 좋습니다. 
 
라마단 단식이 끝나면, "이드 알 피트르"(Eid al-Fitr)라고 하는 명절이 시작됩니다. 이드(Eid)는 위에서 말씀드린 대로 축제를 의미하며, Fitr는 "단식의 종료"를 의미합니다. 즉, 단식이 종료되었음을 기리는 명절입니다. 이드 알 피트르 기간에는 새 옷으로 갈아입고 친지들을 방문하고, 가난한 사람에게 자선을 베풀고 예배를 드립니다. 이 날 나누는 인사는 "이드 무바락"(Eid Mubarak)입니다. 이드를 축복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드 알 아드하 때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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