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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모로코] 지네딘 지단의 뿌리, 베르베르(Berber)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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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방문했던 첫 번째 아프리카 국가는 아프리카 같지 않은 나라 모로코였습니다. 2008년 처음 방문했었는데요, 당시만 해도 모로코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었습니다. 아프리카니까 흑인들이 많고, 덥고, 낙후되어 있고 뭐 이런 정도의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모로코에 도착해 보니, 많은 것이 사뭇 달랐습니다.

그때 방문했던 도시가 영화와 노래로만 알고 있었던 카사블랑카(Casablanca)였습니다. 그런데 그곳에는 아랍인들이 대부분이었으며, 흑인은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날씨는 매우 청명하였으며, 밝고 눈부신 햇살이 따갑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만, 그늘진 곳은 시원하고 상쾌했습니다. 도시 외곽은 소와 양이 풀을 뜯는 평화로운 초원이 펼쳐져 있었고, 도심은 고층 빌딩이 별로 없는 낙후된 모습이었으나 전반적으로 밝고 깨끗했으며 색다른 느낌을 주었습니다. 카사블랑카라는 이름대로 대부분의 건물이 하얀색 계열이어서 더욱 그랬던 것 같습니다. 

카사블랑카는 스페인어로 "하얀 집"을 의미합니다. 

  

출처 : 구글. 이 지도에는 모로코 밑에 서사하라가 있고, 두 국가 사이에 점선이 그어져 있는데요, 모로코에서는 절대 인정하지 않는 경계선입니다. 모로코는 서사하라를 자기 땅으로 주장합니다.

 

시내 중심가 하이야트(Hyatt) 호텔에서 바라 본 풍경
2023년 다시 방문했을 때의 모습. 2011년에는 없었던 고층 건물이 들어서 있습니다(왼편 높은 빌딩)
아래의 하산 2세 모스크와 함께 카사블랑카 대서양 해안의 상징적인 존재인 등대. 이곳에 있는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대서양 석양을 바라보며 해산물을 즐길 수 있습니다.

 
영화가 아니어도 낭만이 가득한 도시
 
카사블랑카를 통해 아프리카에 첫 발을 내디딘 저는 2011년까지 3년간 카사블랑카에서 생활하였습니다. 카사블랑카는 인구 360만 명을 가진 모로코 최대의 도시이며 경제 수도입니다. 돈과 사람이 몰리는 비즈니스의 중심지답게 카사블랑카는 그 어느 도시보다 활기차고 자유분방하며 역동적입니다. 1942년 개봉한 영화 "카사블랑카"를 기억하시는 분들은 이곳을 꽤 낭만적인 도시로 생각하실 것 같습니다.  

그런데 카사블랑카에는 영화 속 흔적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영화의 주요 무대였던 릭스 카페(Rick's Cafe)가 영업을 하고 있습니다만, 이곳은 영화 촬영지가 아닙니다. 카사블랑카는 처음부터 끝까지 미국에서만 촬영된, 그것도 대부분이 할리우드의 세트장에서 촬영된 영화입니다. 그래서 영화 속 낭만을 느끼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제가 경험한 카사블랑카는 영화가 아니어도 상당히 낭만적이고 이국적인 요소가 가득한 도시였습니다. 우리식 건물과는 다른 유럽과 아랍풍의 흰색 건물로 이루어진 도시 경
관도 이국적이었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과 그들의 문화 또한 신기하고 이국적인 매력이 가득했습니다.

모로코 최대의 모스크인 하산2 모스크(93년 완공). 이곳은 종교와 관광, 휴식의 공간입니다. 이곳에서 수영도 하고 낚시도 합니다. 출처 찐여행자.
낡은 건물 사이로 밝고 하얗게 빛나는 건물
현대식 건물과 아랍식 아치가 어우러진 모습
시 중심에서 조금 벗어난 외곽의 모습. 특별할 게 없어 보입니다만, 이 부근이 부자 동네입니다. 넓은 마당과 수영장 등을 갖춘 집들이 많고, 포르쉐가 자주 보입니다.
제가 살던 집입니다. 제가 심었던 꽃들이 만개해 있네요. 저희 집 뒤는 바로 초원이었는데요, 아침마다 닭울음 소리를 들으며 기상했었습니다.


아랍인이 아니었다고?

카사블랑카에서 만난 사람들은 다들 아랍인같았습니다. 사업차 중동 사람들을 꽤 많이 만났었는데, 모로코 사람들의 생김새가 그들과 다를 바 없는 것 같았습니다. 역사적으로 7세기경부터 아랍인들이 마그레브(Magreb)라 불리는 모로코, 알제리 등의 북아프리카 지역으로 이동하였으며, 800여 년간 스페인을 지배하기도 하였기에 지금의 모로코와 카사블랑카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아랍인들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저와 같이 일을 하던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상당수가 아랍인이 아니었습니다. 말로만 들었던 베르베르(Berber)라는 것입니다! 저는 구분하기 어려웠지만, 아랍과 베르베르 친구들은 서로를 구분할 수 있다 합니다. 그래서 가만히 비교해 보니, 아랍인들에 비해 베르베르 친구들의 체구와 두상이 대체로 작은 것 같았습니다.

출처 Minority Rights Group
산악에 자리 잡은 베르베르 거주지와 특유의 문양을 가진 직조물. 제가 만난 베르베르 친구들은 도시에 거주하였으나, 대개의 베르베르는 산악 등 외떨어진 곳에 거주한다 하며 그만큼 그들만의 전통을 잘 보전하고 있습니다. 출처 SOFX.COM

 
베르베르는 우리에겐 매우 낯선 민족입니다만, 모로코와 알제리 등 북아프리카를 중심으로 전 세계에 4천만 명 정도가 있다 합니다. 알제리계 프랑스 축구선수였던 지네딘 지단, 그가 베르베르 후손입니다! 베르베르는 7세기 이후 아랍의 지배를 받았으며, 이들과의 대결 속에서 이슬람을 받아들이며 종교적으로 동화되었습니다만, 그들은 고유의 문화와 역사를 계승/발전시키고,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 중입니다. 해외에 거주하는 베르베르들은 "World Amazigh Congress"라고 하는 비정부 단체를 만들어 활동 중이기도 합니다.
 
위의 Amazigh(아마지그)는 베르베르를 가리키는 원래의 단어입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베르베르라는 말은 아랍인들이 이땅에 이주하면서 사용되었다 하는데, 이 말의 어원이 바베리안(Barbarian)과 맥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즉, "변방에 거주하는 사람, 야만인"이라는 뜻인데, 이 땅의 원주민인 아미지그들에게는 맞지 않는 표현입니다. 베르베르는 당연히 아마지그로 불리는 걸 선호한다 합니다. 

아마지그의 또다른 의미는 베르베르가 사용하는 언어인 타마지그트(Tamazight)입니다. 타마지그트는 베르베르의 언어이긴 합니다만, 카사블랑카에 사는 베르베르 친구들은 기본적으로 모로코식 아랍어 또는 불어를 사용했습니다. 2011년 베르베르 언어가 공용어로 지정되었지만, 그간 아랍어가 유일한 공용어였으며, 행정이나 비즈니스에서는 여전히 불어를 쓰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불어는 소위 배운 애들이나 구사할 수 있으며, 그래서 일부러 불어를 쓰기도 합니다).

이런 와중에 모로코 정부가 베르베르 언어를 공용어로 지정하였으며, 저희 회사가 재빨리 대응하면서 2011년 세계 최초로 베르베르 언어가 탑재된 휴대폰을 출시했었습니다. 이 폰을 출시하기 위해 제가 직접 아마지그 언어학자들과 일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베르베르 언어를 표기하는 문자

 

카사블랑카의 트램. 그야말로 상전벽해입니다. 제가 있을 때만 해도 한창 공사 중이었는데, 2012년 1호선 개통 이후 4호선까지 운행 중입니다.
카사블랑카의 트램 노선도. 사진 왼쪽 상단에 아마지그가 영어/아랍어와 함께 표기되어 있습니다. 아마지그가 공용어가 되면서 생긴 변화입니다.

 
제가 거주했던 2011년까지만 해도 저와 같이 일을 했던 아랍, 베르베르 친구들은 서로 존중하며 평화롭게 지내는 모습이었습니다. 모로코 정부는 베르베르 언어와 문화를 장려하는 등 우호적인 정책을 취하기도 했는데요, 오랜 대결과 타협의 역사 속에 잠재된 민족 간 갈등이 다 사라진 건 아닌 것 같습니다. 따라서 모로코 정부가 지역 간/민족 간 균형 발전과 화합을 꾀하지 않고 베르베르를 사회경제적으로 소외시킨다면 2016년 발생한 히락(Hirak) 저항운동처럼 베르베르인들의 저항에 다시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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