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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민주 콩고, 끊이지 않는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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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에서 벨기에 레오폴드 2세의 잔혹한 식민통치에 대해 말씀드렸었는데요, 1960년 "아프리카의 해"에 민주 콩고 공화국 역시 독립을 쟁취하였습니다. 그런데 식민시대는 물론 독립 후 콩고 민주 공화국이 겪은 비극과 분열은 우리의 모습과 너무나 흡사합니다.
 
두 나라 모두 제국주의 식민지를 거치며 온갖 수탈과 인권유린을 당하였으며, 해방 직후에는 독립투쟁을 이끈 지도자들 간의 갈등과 대립으로 민족의 영웅이 살해당하였습니다. 또한 냉전에 따른 외세의 개입과 권력자들의 탐욕에 의해 나라가 분열되었고, 급기야 전쟁이 벌어졌으며, 수많은 국민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후 우리는 일련의 비극을 딛고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이루어낸 반면, 콩고 민주 공화국은 여전히 가난과 전쟁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기적을 이루었듯이 민주 콩고 공화국도 이름에 걸맞은 민주화와 경제번영을 이루었으면 합니다.
 

독립하자마자 내전이 발생하다.

콩고 민주 공화국의 독립을 이끈 젊은 투사 루뭄바(Patrice Émery Lumumba)는 1960년 독립과 함께 34세의 나이에 초대 총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는 친벨기에 정권을 수립하고자 했던 벨기에의 의도에 반하는 것이었으며, 루뭄바의 투철한 민족의식과 반식민주의 정신은 벨기에에게 큰 위협이 되었습니다.
 
1960년 6월 콩고 독립 기념식에서 루뭄바는 벨기에의 식민통치를 신랄하게 비판하며, 벨기에의 간섭에서 벗어나 콩고를 통일된 독립 공화국으로 이끌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당시 콩고는 수백년 간 지속되어 온 부족 및 지역 간 갈등이 존재하고 있었고, 루뭄바를 포함한 독립운동 지도자들 간의 갈등과 대립이 고조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특히 벨기에와 결탁한 동남부 카탕가 주의 총리였던 모이스 촘베는 광산 개발권을 둘러싼 이권을 지키기 위해 1960년 7월 분리독립을 선언하였고, 이로 인해 콩고는 독립하자마자 내전 상황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콩고 근대사의 주요 인물들. 출처 위키피디아

 
내전은 외세의 개입으로 대리전 양상을 띠게 되었는데, 미국의 지원을 받지 못한 루뭄바는 소련에 도움을 요청하였고, 촘베는 벨기에의 지원을, 카사부부 대통령은 미국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유엔 평화유지군까지 파병된 콩고 내전은 결국 1965년 모부투의 쿠데타로 막을 내렸는데, 이 과정에서 루뭄바가 처참한 죽임을 당하였으며, 이후 콩고는 모부투의 장기독재 및 전쟁의 늪에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벨기에, 황산으로 독립영웅의 시신을 인멸하다!  

루뭄바는 콩고 독립 이후에도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했던 벨기에를 정면으로 거부하였으며, 소련을 끌어들임으로써 미국과도 척을 지게 되었습니다. 결국 그는 벨기에와 미국, 그리고 이들의 사주를 받은 콩고인들에 의해 잔인하게 살해되었습니다.

1960년 체포된 루뭄바가 킨샤샤로 이송되는 모습. 신발도 신지 못한 모습입니다.


루뭄바를 살해한 후, 벨기에인들은 루뭄바의 묘지가 순례지가 되는 것을 막고, 완벽한 증거인멸을 위해 루뭄바의 시신에 황산을 부었습니다. 그의 온몸이 녹아내렸으나 금니 2개와 손가락 2개는 남겨졌습니다. 그중 금니는 황산을 부은 것으로 알려진 벨기에인이 전리품으로 가져갔습니다.
 
2016년 루뭄바 사망 55주년을 앞두고 루뭄바의 금니를 가져간 것으로 알려진 벨기에인의 딸이 방송에 출연하면서 이 만행이 전세계에 알려졌으며, 루뭄바의 유족은 유해 반환소송을 제기했습니다.

4년간의 소송 끝에 결국 2022년, 루뭄바의 금니는 콩고 민주 공화국으로 반환되었으며, 벨기에 정부는 유가족에게 사과의 뜻을 표했습니다. 끝까지 만행을 저질렀던 벨기에 정부, 그래도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모습이 일본 정부보다는 나아 보입니다.

루뭄바의 금니와 유해 반환식. 나머지 한 개의 금니와 2개의 손가락은 행방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모부투의 장기독재와 도둑정치, 그리고 전쟁 지속

1965년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장악한 모부투(Mobutu Sese Seko)는 1997년 축출될 때까지 무려 32년간 독재정치를 펼쳤습니다. 이 과정에서 반대파 숙청 및 대량학살, 엄청난 부정축재와 인권탄압을 자행하였으며 콩고 경제를 파탄 상태로 내몰았습니다. 모부투가 집권하는 동안 콩고 GDP는 65%나 축소되었습니다. 이는 모부투가 나라 돈을 약탈하여 자기 배를 불린 결과이며, 그의 이러한 행위는 도둑정치의 전형이 되었습니다.

한편, 모부투는 되도 않는 우상화 정책과 아프리카식 정책을 펼쳤는데 그 내용이 참으로 황당합니다. 구체 내용은 아래 링크를 클릭해 보시기 바랍니다.
 
모부투의 막장 정치

모부투는 대외적으로 반공주의를 내세워 미국 등 서방세계와 손을 잡았고, 이를 통해 서방세계의 제재는커녕 상당한 지원을 얻어 냈습니다. 하지만 냉전종식과 함께 모부투는 미국 등으로부터 압박을 받았고, 1996년 10월 시작된 1차 콩고전쟁에서 르완다 투치족과 손을 잡은 카빌라(Laurent Kabila) 반군에 의해 패함으로써 권좌에서 물러났습니다. 그는 1997년 모로코로 망명하여 모로코의 수도인 라밧(Rabat)에서 사망하였습니다.

카빌라는 2001년 암살되었으며, 그의 아들이 29세의 나이에 대통령직을 승계했습니다. 출처 나무위키


 1차 콩고전쟁은 7개월이 채 안 되는 짧은 전쟁이었습니다만, 르완다 및 앙골라 등 다수의 아프리카 국가들이 개입함으로써 제1차 아프리카 전쟁이 되었으며 곧바로 2차 콩고전쟁을 불러왔습니다.

카빌라 집권과 함께 카빌라 반대 세력이 반란을 일으켰고, 이들과 이해관계를 같이 한 르완다와 우간다가 반군을 지원함으로써 2차 콩고전쟁은 아프리카 전쟁으로 다시 비화되었습니다. 짐바브웨/앙골라/나미비아/수단/잠비아가 콩고와 함께 했고, 르완다/우간다/부룬디가 반군을 지원하였습니다. 2차 콩고전쟁은 1998년 8월 발발하여 2003년 7월까지 지속되었는데, 4백만 명 이상이 사망하였고, 2천5백만 명의 난민이 발생하였습니다.

두 차례의 전쟁 이후에도 콩고는 여전히 전쟁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특히 르완다 등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동부 지역에서는 M23 등 120여 개의 무장 반군세력들이 끊임 없이 테러를 자행하고 있습니다. 콩고에서만 매년 백만 명에 가까운 난민이 발생하고 있으며, 지난 6월에는 반군의 박격포 공격에 의해 콩고에 파견된 남아공 군인 2명이 사망하기도 하였습니다.


이상 민주 콩고 공화국의 아픈 역사를 간략히 정리해 보았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제가 방문했던 민주 콩고 공화국의 수도인 킨샤샤 이모저모를 사진과 함께 소개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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