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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라리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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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베리아, 우리의 아프리카 최대 수출 대상국이 된 사연 라이베리아는 바로 옆 나라인 시에라리온과 함께 해방된 흑인 노예들이 역이주하여 세운 나라입니다. 시에라리온은 영국의 노예제 폐지주의자(Abolitionist)들에 의해, 라이베리아는 미국 식민협회(American Colonization Society)에 의해 역이주가 이루어졌습니다. 물론 소수의 인원이 역이주하였기 때문에 현재 각 국가의 다수 종족은 기존 원주민들입니다. 시에라리온 방문기는 지난 글을 참조하시기 바라며, 이번 글에서는 라이베리아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자유를 찾아 역이주한 흑인 노예들, 시에라리온에서 이날치 밴드를 만나다."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빵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 전자는 미국의 독립운동가였던 패트릭 헨리(Patrick Henry)가 영국의 식민지배를 거부하며 외쳤..
자유를 찾아 역이주한 흑인 노예들, 시에라리온에서 이날치 밴드를 만나다.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빵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 전자는 미국의 독립운동가였던 패트릭 헨리(Patrick Henry)가 영국의 식민지배를 거부하며 외쳤던 말입니다. 1783년, 미국은 영국과의 독립전쟁에서 승리하며 그토록 원하던 독립과 자유를 얻었습니다.  "빵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 이 말은 1789년 프랑스 대혁명 당시, 빵 평등권을 요구하며 외쳤던 구호입니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신분에 따라 다른 빵을 먹어야 했습니다. 귀족들은 흰색의 부드러운 빵을 먹었으나, 가난한 하층민들은 호밀로 된 검고 딱딱한 빵을 먹어야 했던 것입니다. 결국 빵 평등권은 구현되었고, 이때 만들어진 빵이 바로 바게뜨(Baguette)입니다. 위의 두 구호는 민주주의의 핵심가치인 자유와 평등을 요구하는 처절한 외침이..
아프리카의 한식당 아프리카에서 생활하면서, 30개 정도의 국가를 다녀 보았습니다. 한 두번 방문한 나라도 있었고, 몇 차례 들락날락한 국가도 있었습니다. 어떤 나라를 가든, 현지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게 저의 기본 생각이었습니다만, 아프리카에서는 그러기 힘들었습니다. 저와 같이 일을 했던 파트너들이 레바논, 인도 사람들이었는데 이들은 현지 음식을 먹지 않았습니다. 기본적으로 자기들 음식을 선호했고, 무엇보다 손님에게 내놓을 만한 아프리카 음식이나 식당이 없었습니다. 따라서 이들을 만나면 레바논이나 인도 음식, 아니면 서양 퓨전 요리를 먹었습니다. 아프리카에서의 우리 한식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안타깝게도 한식을 먹을 기회가 상당히 제한적이었습니다. 한식당이 없는 나라가 대부분이었고, 영업 중인 한식당들은 규모나 시설이 영..